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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제왕1편-반지의 원정대 영화를 보고나서..후기작성완료☆새 창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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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철의돌고래26 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6-08-01 10:09

여행 24일차 (8.1.)​밤새 변압기에 문제가 있는지, 콘센트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핸드폰이 제대로 충전이 안 되었다. 콘센트에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카운터에 가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문제는 직원과 소통이 안 되었다. 나중에야 알게된거지만 '콘센트'라는 말 자체가 콩글리쉬라고 한다. 영어로 콘센트는 outlook이라고 한다고. 어쩐지 내 말을 못 알아듣더라. 계속 카운터에서 콘센트! 라고 이야기했는데, 나중에 진상을 알고 나니 부끄러움이 북해의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침으로 무려 9파운드(약 15000원)를 내면 잉글리쉬 브레이크퍼스트를 먹을 수 있다해서 조식을 신청했다. 영국 요리가 맛없기로 유명해도 아침식사 하나만큼은 다른 유럽국가 이상으로 맛있다던데, 정작 가보니 있는 거라고는 빵, 햄, 치즈, 음료수, 베이크드빈, 소시지가 전부였다. 평범한 호텔 조식보다도 퀄리티가 현저히 떨어졌다. 이걸 먹으려고 9파운드나 돈을 지불했다고? 여행하면서 이렇게까지 돈이 아까운 건 처음이었다. 그 와중에 음식들도 죄다 차가웠다. 안에 품고가면 대구의 무더위 따윈 이겨낼 수 있을 정도였다. 대충 한 접시 먹고서는 툴툴거리며 자리를 비웠다. ​로열 보타닉 가든스코틀랜드 시내에만 있기엔 답답하고 심심하기도 해서 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봤다.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지체 장애인 한 명이 보호자로 추정되는 비장애인과 함께 버스를 탑승하는데, 버스 기사가 직접 나서서 그가 타고 내리는 과정을 모두 도와줬다. 영국도 그렇고,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장애인처럼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도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나 문화가 잘 갖춰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니, 이동권 관련으로 이슈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런 점에서는 아직 한국 사회가 덜 성숙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 에든버러 시내에서 살짝 벗어나자 평범한 마을 풍경이 나타났다. 갈색 벽돌로 된 빌라들이 늘어선 거리가 나왔고, 이 거리를 벗어나자 전원 풍경에서나 볼법한 단독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알록달록한 간판들이 중간중간 걸려있었다. 로열 마일 거리에서는 높은 고딕풍의 건물들을 봤었는데,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자 이런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에든버러라는 도시의 또 다른 매력을 본 것 같았다. 에든버러 시 외곽의 큰 건물들에든버러 외곽으로 빠지면 이런 단독주택들을 볼 수 있다에든버러의 전형적인 단독주택그렇게 게약 20여분을 달려 에든버러 북부에 위치한 로열 보타닉 가든에 도착했다. 에든버러를 대표하는 식물원으로, 다양한 기후의 식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온실이 수리 중이었다. 그렇기에 야외 전시 식물들만 관람을 할 수 있었다.로열 보타닉 가든의 지도로열 보타닉 가든의 특징 중 하나라면, 에든버러 특유의 추운 기후를 십분 활용한다는 것이다. 에든버러는 8월인 지금도 한 낮에 20도가 안 넘을 정도로 추운 지역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고산지대 식물들 위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스코틀랜드에 자생하는 식물부터, 히말라야, 티베트, 안데스 등 전 세계 각지 고산지대 식물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식물원은 화려한 열대 식물들 위주로 되어있다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다소 생소한 풍경을 만나볼 수 있었다. 추운 지방에서나 볼 법한 침엽수다른 식물원처럼 색이 다양하진 않다열대지방을 탐험한다기 보다는, 그냥 산책로 느낌이다네팔에서 채취한 식물들그렇기에 분위기가 우리나라 식물원에 비하면 좀 정돈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고산지대 식물 위주다보니, 화려한 꽃이나 엄청나게 높은 나무가 없었다. 어떻게보면 슴슴했고, 또 달리 표현하면 소박했다. 그렇게 화려하고 눈길을 끄는 식물은 없었지만, 대신 다른 식물원보다, 그 어떤 숲보다 짙게 녹음이 우거진 길을 걸어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녹음 사이에 숨어있는, 부끄럼쟁이 작은 꽃들을 찾아나섰다. 곳곳에서 이런 작은 꽃들을 만날 수 있다버려진 잔해들은 식물들의 터전이 되었다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꽃 중 하나인 수국그렇게 식물원을 돌아다니는데, 수풀에서 무언가가 부스럭거렸다. 무슨 포켓몬 게임에서 야생 포켓몬이 나오듯이, 청설모 한 마리가 갑자기 뛰어나왔다. 그는 입에 도토리를 물고서는 길앞잡이 마냥 내 앞에서 욜랑거렸다. 한 작은 아이가 청설모를 발견하고 다가와 손을 내밀었더 청설모는 간식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냄새를 맡고선, 다시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누구의 꼬리인가?람쥐꼬리다람쥐각 구역이 나눠져 있었는데, '중국의 정원'이라는 곳이 있었다. 중국 고산지대에서 채취한 식물들을 전시해놓은 공간으로, 이름에 걸맞게 중국풍으로 꾸며져는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느낌에서 중국풍을 준 것인지는 알 수 있었으나,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느낌이 났다. 애초에 여기서 말한 고산지대는 티베트나 위구르 지역을 말하는 것이라, 우리가 아는 한족의 문화와 어울리는 곳이 아닐텐데, 정말 분위기 좋은 식물원이었지만 이런 점에서는 좀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래도 식물들은 멋있었다. 중국?풍참고로 이날 최저기온은 12도, 최고기온은 17도에 불과했다. 한여름인데도. 그리고 이 날씨에 저런 옷차림이었다...그... 나무에 판다 모형 붙여놓는다고 중국풍 되는 건 아닙니다만?가장 인상깊은 곳은 '돌정원'이라는 공간이었다. 말 그대로 돌로 구성된 정원이었다. 넓은 잔디밭 곳곳에 큰 돌을 설치해서 언덕처럼 울퉁불퉁하게 조성해 놓았다. 그 위에는 돌이나 모래 위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식물들을 심어 놓았다. 마치 잔디로 된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산호군락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일본식 정원 특유의 정갈함도 함께 느껴졌다. 일본식 정원을 떠올리게하는 돌정원의 풍경잔디가 바다가 되었다인근에는 전원 풍의 건물과 함께 구성된 텃밭도 있었다. 덤불로 이루어진 벽을 지나자 피터 래빗 시리즈에나 나올법한 밭이 나타났다. 줄기와 가지마다 소담스러운 열매들과 작물들, 그리고 작은 꽃들이 맺혀 있었다. 지금까지 척박한 환경에서나 살아가던 식물들을 보다가 갑자기 이런 농작물들을 보니 이들이 귀엽게 느껴졌다. 에든버러는 식물원마저도 에든버러스러웠다. 커다란 덤불벽을 지나자 정원이 나타났다밭 옆에 있던 정원 (정작 밭 사진을 안 찍었다)배나무에 배를 떼어가지 말라고 안내문이 써져 있었다. 아무래도 배를 서리하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보타닉가든에선 크고 화려한 꽃 대신 이렇게 작은 들꽃들을 만나볼 수 있다수수하지만 그래도 친숙한 들꽃의 매력을 알 수 있는 곳꽃 사진 많이 찍으면 늙은거라던데로얄 보타닉 가든은 단순히 식물을 관상용으로만 전시하는 곳은 아니었다. 환경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멸종 위기 식물들을 보전하고, 지역사회에 환경 보호의 가치를 전달하는 기능도 하고 있었다. 본래 식물원이란 장소는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각지로부터 수탈한 진귀한 식물들을 전시하고 구경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이는 동물원도 마찬가지다.) 식민주의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장소가 이제는 종다양성 보존이라는 범세계적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시대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애초에 이런 공간이 조성되지 않았다면, 혹은 이런 공간이 조성될 수 있었던 제국주의 시대가 열리지 않았다면, 종 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뒤늦게나마 이렇게 고생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로열 보타닉 가든의 꽃들화려하진 않지만, 그래도 정감돋는 모습의 식물원이었다로열 보타닉 가든의 풍경고산지대의 식물들다른 식물원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의 로열 보타닉가든로열 보타닉가든의 산책로전반적으로 식물원은 그렇게 화려하진 않았다. 오히려 정갈했다. 다른 식물원이 화려한 양식이라면, 로얄 보타닉 가든은 정갈한 한정식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았고, 또한 에든버러스러웠다. 무작정 다양한 색깔로 화려함을 보여주기 보다는, 한정된 색으로 추운 지역 특유의 단정하면서도 조용한, 그렇지만 겨울 안개처럼 중후한 분위기가 깔려 있어서 좋았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다른 유럽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에든버러만의 매력이었다. 로열 보타닉가든에서 찍은 사진들식물원 내 카페에서 얼그레이티에다가 어제 사온 퍼지를 곁들여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카페에 가니, 커피는 없고 모든 음료가 차로 구성되어 있었다. 단순히 차 종류만 고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어떤 브랜드의 차를 마실지까지 골라야했다. 도대체 얼마나 영국 사람들이 차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얼그레이티는 우유와 함께 나왔다. 차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밀크티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영국에 왔으니 영국의 풍습을 따라야 하는 법. 차에 우유를 곁들여 먹었다. 우유를 적게 타면 특유의 맛이 너무 진해서 별로고, 그렇다고 우유를 너무 많이 타면 차 맛이 안 느껴지니, 적당한 맛을 찾으려고 계속 우유를 타고, 차를 타고 하다가 이도저도 아닌 맛으로 밀크티를 다 마시곤 말았다. 그래도 퍼지가 맛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밀크티와 함께근처에 바닷가가 있어서 그런가 갈매기들이 계속 주위를 맴돌았는데, 한 갈매기가 옆 자리 남자의 빵을 노리고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자, 다른 자리에 앉은 여자가 그 남자에게 알려줬고, 갈매기는 아쉽게도 빵을 훔쳐먹는데 실패했다. ​워디 만점심 식사 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버스로 가기엔 애매한 거리라서 그냥 스코틀랜드의 주택가를 따라 걸어가기로 했다. 시 외곽이라 그런지 높은 건물들보단 낮은 단독주택들로 이뤄진 거리가 조성되어 있었다. 각 집들마다 담벼락이 있었고, 담 너머로는 단층 규모의 주택들이 늘어나 있었다. 마치 미국 영화에나 나올법한 단독주택단지를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집들은 모두 누런색 벽에 회색 지붕이 올려져 있었다. 워디 만으로 향하는 길에든버러 북부 교외의 길거리에든버러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는 주택가다축구장, 강아지 DIY 목욕가게, 식료품점을 지나갔다. 날씨는 우중충하고 바람은 차가웠다. 기온을 확인해보니 15도 밖에 안 되었다. 하필 이날 반팔에 반바지를 입었기에 계속 추위에 떨면서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식물원에는 나와 같은 관광객들이나 외국인들도 있었지만, 확실히 관광지가 아닌 곳을 걸어다니다보니 외국인이라고는 나 혼자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의 풍경을 더 자세히 만나볼 수 있었다. 비록 그렇게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평범한 주택가를 걸어다니며 그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는 감각을 느꼈다. 평범한 주택들의 모습안 흔한 스코틀랜드 길냥이에든버러의 길거리그렇게 계속 북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좁은 골목이 나타났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단독주택들이 모여있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어제 빅토리아 로드에서 만났던 건물들이 생각나는, 그런 파스텔풍의 집들이었다. 집들 사이를 지나자 해안도로가 나타났고, 도로 너머로 북해의 풍경이 보였다. 니스에서 본 지중해에 이어, 이번 여행 중 두번째로 만난 바다였다. 바닷가로 가자 알록달록한 집들이 나타났다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북해 연안의 어촌마을이 나타난다니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자갈소리가 들리던, 그리고 강렬한 태양빛이 내리쬐던 시끌벅적한 지중해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축축한 모래사장에 콘크리트로 만든 부두가 길게 뻗어있었다. 수영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강아지와 함께 즐기는 덩치 큰 남자 한 명이 전부였다. 찬 바람이 파도를 최대한 해변으로 끌고가려고 했지만, 파도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잔잔한 바다 위로는 이끼 낀 나무 조형물들이 외딴 섬처럼 서 있었고, 그 위에는 이름 모를 바다새들이 앉아있었다. 고요했다. 해무는 없었지만, 고요함이 짙게 깔려 있었다. 바다 건너로는 수평선 대신 바위섬들이 보였다. 전반적으로 차갑고, 쌀쌀했다. 흑백으로 이뤄진 풍경이 아님에도, 바닷가 풍경이 흑백처럼 다가왔다. ​몇몇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들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따금씩 런닝을 뛰는 사람이나 사이클을 타는 사람이 해안도로를 따라 나타났지만 관광객으로 보이진 않았다. 이 만에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라곤 나 혼자가 전부였다. ​부두를 따라 바닷가로 향했다. 해안선을 따라 늘어서있는 집들이 보였다. 영화 ;에서나 볼법한 그런 풍경이었다. 밝은 색감의 집들과 어두운 색의 바다가 대비되었다. 부두는 딱딱한 돌로 되어있었고, 부두의 주변에는 테트라포드들이 깔려 있었다. 알록달록 거리는 에든버러의 집들에든버러 해변의 모습뭔가 색이 없으면 집들끼리 구분이 안 갈 거 같다낚시하는 이들을 지나가며 바다를 봤다. 한 낚시꾼이 외국인이 지나가는게 특이한지 날 유심히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대신 저 너머를 봤다. 부두의 끝에는 나무로 된 구조물 잔해와 이상한 그래피티가 그려진 벽이 있었다. 과거에 무언가 건축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과거에 무슨 구조물이 있었는지 전혀 추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된 잔해 위에는 새 몇 마리만이 앉아 바닷바람을 쐬고 있었다. 나는 부두에 앉아 새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내가 건드릴 수 없다는 걸 아는지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선 이끼를 쪼아댔다.낚시하는 사람들과 부두부두는 이렇게 돌바닥으로 되어있다부두에 위치한 정체불명의 벽. 아마 과거에 등대가 있던 흔적이 아닐까 싶다낚시꾼과 비행기, 그리고 건너편의 섬들​바다 위로는 이름 모를 섬들이 둥둥 떠있다. 이따금씩 배가 지나가긴 했지만, 배보다도 구름이 수면 위를 더 많이 지나갔다. 구름이 해를 가리는지 여부에 따라 바닷물의 색깔이 달라졌다. 그늘 막에서는 푸른 색이었던 바다가 햇살 아래선 녹색으로 빛났다. 에메랄드색은 아니었다. 식물원에서 만난 고산지대의 이파리를 떠올리게 하는 녹빛이었다. 누군가가 버리고 간 낚시의자나무 구조물과 그 위의 새들윤슬조차 없는 해면사실 북해의 바다는 심심했다. 영상에서는 북해가 세계에서 가장 파도가 심한 곳이라고 했는데, 파도 하나 치지 않는다. 윤슬도 없다. 이렇게 조용한 바닷가는 오래간만이었다. 과거 제주도에 한 작은 어촌에 묵은 적이 있었다. 그때 아침에 만난 바다가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때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이 어촌 마을의 모든 침묵과 비밀을 속에 품고 바다는 내 곁에 아무말 없이 앉아주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니스처럼 윤슬이 반짝거리고 활기차고 에메랄드빛깔을 띄는 바다가 아니어서 오히려 좋았다. 시간의 실존 여부 조차 잊은 채, 바다와 새와 섬들만을 바라봤다. 이 순간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구름이 전부였다. 저 바다 건너엔 이름 모를 섬이 있다부두 바로 옆에는 이렇게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다갑자기 모든 게 부질없이 느껴졌다. 이 여행조차도. 그리고 여행 이후에 치열하게 살아가야할 인생 조차도. 사실 나는 인생 계획이라는 것을 26살까지밖에 안 짰었다. 열심히 대학을 다니고, 졸업 후에 학군 장교로 군 복무를 하는 것. 이게 내가 세운 인생 계획의 전부였다.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할 시기였는데, 그 생각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 어촌에 정착해서, 저들처럼 낚시도 하고 때때로 바다도 보면서, 그런 삶을 살고 싶어졌다. 물론 내가 책임져야할 건 많단 건 알지만, 그런 것들로부터 도망쳐서 저 바닷물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부두 건너로 보이는, 그래도 좀 번화한 곳으로 보이는 거리다양한 낚시꾼들의 모습하지만 나에게는 갈 수 있는 중립국도 없고, 갈매기로 환생한 연인도 없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수로 카메라 후드가 떨어져서는 테트라포트 위로 굴러갔다. 다소 위험할 수 있지만, 한 발을 테트라포트에 걸친 상태로 후드를 집어들었다. 생각해보니 조금만 삐끗했다면, 테트라포트 사이에 빠져서는 온 몸이 콘크리트에 부딪쳐 산산조각나 갯강구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은 그대로 바다에 빠져서 저체온증으로 먼저 죽을지, 아니면 산소부족으로 먼저 죽을지를 저울질하는 신세가 되었거나.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왔다. 추웠다. 한기를 느끼는 것을 보니 아직 나는 살아있다. 나에게는 책임져야할 게 많고, 가야할 길도 길고, 겪어야할 고난도 아직 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소화하지 않은 여행일정이 남아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바닷가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워디(wardie)​어느 사이에 몇몇 사람들이 해변으로 놀러와 있었다. 리트리버와 어린 아기가 놀고 있었다. 아기가 바다를 향해 공을 던지자, 리트리버는 헤엄쳐서 공을 주어왔다. 그 사이에 아기는 모래성 쌓기에 빠져서 공을 주어온 리트리버를 무시하고 있었다. 리트리버가 짖자 아기는 그제서야 공을 다시 던져준다. 해변가에서 노는 사람들해변가로 소풍을 나온 사람들다른 곳에서는 소풍을 즐기고 있었고, 심지어 이 추운 날씨에 일광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이 공간이 새롭고 신비로운 공간일지 몰라도, 저들에게는 그냥 일상적인 공간에 불과하다. 해안가의 집해안가를 따라 칠해진 집들해안도로를 따라 걸어가보기로 했다. 바다 바로 옆으로는 도로가 나 있어서 자전거나 러너들이 뛰어다녔다. 정작 인도는 흙으로 되어있었는데, 그래서일까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다니면서도 바다의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흙길로 되어있다트레킹과 바다산책을 함께 할 수 있다이렇게 런닝을 뛸 수 있는 평탄한 도로도 있다평범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해안 산책로의 모습바다를 따라 30분 정도를 걸어갔다. 바다를 따라 걷는 것은 좋았다. 바람도 시원하고, 잔잔한 바다를 보며 마음도 가라앉혀야 하는데.... 계속 찬 바람을 맞은 탓일까,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다. 하지만 주위엔 화장실로 이용할만한 가게가 전혀 안 보였다. 하다못해 도움을 요청할만한 민가도 없었다. 뭔가 건물이 나올 때까지 급히 서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 경보 선수에 빙의해서는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바다를 보며 천천히 걸어갈 여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서둘러야 했다. 안 그랬다간 이역만리 땅에서 큰 사고를 치거나, 아니면은 길가에서 해소하다가 현지인에게 들켜 어글리 코리안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중국어라도 배워갈 걸. 아니, 일본말은 할 줄 아니까 스미마셍이라도 해볼까? 아니 들키지만 않으면 되잖아. 하지만 그러기에는 지나가는 러너들이나 차들이 많았다. 누군가가 볼게 분명했다. 길을 걷다가 잠시 뒤돌아본 해안가의 모습. 아까 그 알록달록한 집들은 사라지고, 다시 칙칙한 풍경이 보인다.자전거를 타는 사람터질 것 같은 상황, 바다고 하늘이고 뭐고 모두 누렇게 보이던 와중, 저 건너 식당 하나가 보였다. 주여, 나를 버리지 않았습니까. 급히 뛰어가서 화장실부터 찾았다. 다행히 점원분들은 내가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바로 알았는지 주문을 안 했는데도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해줬다. 감사의 의미로 흑맥주 한 잔을 사서는 테라스 자리에 앉아 훌쩍였다. 승리의 기념주자세히보니 이 곳에도 부둣가가 있었다. 그래도 여기에는 낚시배들이 꽤 많이 정박해 있었고, 중앙에는 분홍색 등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뭐랄까, 칙칙해 보이는 바닷가 분위기와 대비되게 건물들 색깔은 전반적으로 아기자기했다.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밝게 바꿔보려고 하는 노력일까? 하지만 튀기보다는, 오히려 이 파스텔풍이 북해 바다 특유의 축축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살려주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오래 걷다가 마신 흑맥주라 그런가, 취기가 서서히 올라왔다.아기자기한 등대여기도 여러 어선들이 자리잡고 있다.원래는 여기서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바다도 좋고, 취기도 올라왔겠다 그냥 좀 더 놀다 가기로 했다. 마침 도보 10분 거리에 슈퍼마켓이 있었다. 슈퍼에서 훈제연어와 유부초밥을 샀다. 술도 살까 했지만, 더 마셨다간 확 가버려서 그냥 여기서 잠들어버릴 것 같았기에 그냥 음료수를 샀다. 날씨가 추워서 술이 금방 깰까 싶었는데, 바람에 불이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타오르듯이, 취기 역시 찬바람이 불때마다 더욱 타올랐다. 다행히 취기를 그대로 간직한 채로 바닷가를 더 걸어다닐 수 있었다. 한국식 닭고기 국수가 뭐지....?마침 곶에 조성된 공원이 있었다. 방파제 위로 만들어진 잔디밭 위에 앉았다. 연어와 초밥 포장지를 까고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술은 아니었지만, 과일주라 생각하고 마시니 취기가 계속 이어졌다. 푸른 바다, 파도, 하늘, 그리고 고 그 위의 잔디. 유럽을 여행 다니면서 도시도 보고, 멋진 건축물도 보고, 화려한 미술작품도 봤지만, 역시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었다. 아무리 멋진 도시 풍경을 본다고 하더라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에든버러 이름 모를 어촌마을의 풍경보다 더 멋있을 순 없었다. 비록 연어는 가시가 많았고, 유부초밥은 밥이 얼어있었지만, 전혀 상관 없었다. 바다가 있으니까. 파도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방파제에 부딪쳤다. 파도소리가 낮고도 깊었다. 공원에도 산책로가 자리잡고 있다. 사진을 보니 이런 돌바닥 위에서 먹었다뭐 상관없지내가 이렇게까지 바다를 좋아했나. 이번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잔디밭과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바닷가를 걸어다니면서 나 같은 여행객은 한 명도 못 봤다. 나만의 비밀 여행지를 찾아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만이 아는, 그리고 오직 나를 위한 여행지가 에든버러에 있었다. 북해에서의 산책은 다시는 잊지 못할 것이다이런 멋진 풍경 배경으로도 한 컷​에든버러의 밤 그렇게 워디에서의 바다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우선은 따뜻한 물로 몸을 좀 녹이고 잠시 낮잠을 잤다. 저녁 8시, 살짝 늦은 시간에 밖으로 나섰다. 원래는 worlds'end라고 하는 현지 맛집을 가보려고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각에 나온 탓인지 더 이상 주문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중세 시대를 연상케하는 오래된 식당, 벽걸이 텔레비전에서는 올림픽 수영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다. 전 세계 각지의 선수들이 출전하는 가운데, 중국 선수와 북한 선수가 함께 출발대에 섰다. 어디를 응원할까. 그래도 가재는 게편이라고, 북한을 응원하기로 했다. 북한 선수가 중국 선수를 이기긴 했지만, 아쉽게도 예선 통과엔 실패했다. ​저녁 식사로 고기 파이를 주문했다. 감자와 같이 나왔는데, 토막낸 감자가 제대로 익지 않은 상태였다. 고기파이도 양도 작고, 맛도 별로였다. 분위기만 중세풍인줄 알았는데, 음식의 맛 마저도 중세풍이었다. 맛없어 보인다고? 실제로 맛없었다여기서도 테넌트 맥주를 마셨다저녁이 맛 없어서 아쉬웠기에 인근에 위치한 바로 향했다. 라이브 바로, ㄷ자 형태의 테이블을 둘러싸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음악가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노랫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자리가 없어 바 테이블의 구석에 앉아서는 스카치 위스키를 한 잔 시켰다. 에든버러에 가면 꼭 마셔보라던 스카치 위스키. 한 잔 마셨다. 사실 위스키를 마시는 법을 몰라서, 걍 한 번에 원샷 해버렸다. 갑자기 화한 향이 확 올라오더니, 위스키가 내 목을 따라 위장으로 내려가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불타는 애벌레 한 마리가 내 몸안으로 들어와 깊숙한 곳으로 서서히 기어가고 있었다. 속을 식히기 위해 테넌트 맥주를 한 잔 주문했다. 내 옆에는 덩치 큰 남자가 앉아있었는데, 그의 팔에 새겨진 '용사(勇士)'라는 문신이 눈에 띄었다. 맥주 한 잔을 더 시켰다. 그러고서는 홀 중앙에 자리가 나 그곳으로 향했다. 나도 모르게 그루브를 타고 있었다. ​용사 문신을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자신의 친구와 함께 왔다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이 술집의 유일한 유색인종, 그것도 동양인이라 호기심을 가진듯 했다. 간단한 통성명을 했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는 흥미를 느꼈다. 그도 그럴것이 그와 그의 친구는 백파이프 연주자로 오는 11월에 한국으로 공연을 갈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서울 외에도 DMZ에서도 공연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나는 바로 몇달 전까지 DMZ에서 복무했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군복무를 이야기하자, 이 둘이 흥미를 가졌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 모두 전역 군인 출신으로, 한 명은 아프가니스탄 파병까지 갔다왔다고 한다. 내가 전역한지 이제 한 달 넘었다고 하자, 그들은 축하한다며 각각 맥주 한 잔과 위스키 한 잔을 전역주로 사줬다. 아무리 양주라지만, 전역주는 원샷 하는 것이 예의이기에, 바로 한 잔 마셨다. 뜨거운 애벌레 한 마리가 추가로 더 들어왔다. ​그들은 'Thank you for your service from NATO'라고 말해줬다. 나도 감사의 의미를 전했다. 외국에서는 군복무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준다고 들었는데, 내가 이 멘트를 들을 줄은 몰랐다. 28개월 동안, 대전과 철원에서 고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사실 새록새록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얼마 안 되었지만. 그래도 군대를 다녀오길 잘 한 것 같다. 이렇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 와중에 옆에 실제 소령 분이 계신다면서 나에게 소개를 해줬다. 얼떨결에, 영국 소령까지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왜 중위까지만 하고 전역했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군대가 안 맞았다고 말했다. 뭐, 사실이니까. 군대가 안 맞아서 전역한 거니까. 그들은 이번 미국 대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향후 한반도 정세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누가 되어도, 한국은 어려울거라고. ​그렇게 그들과 안들리는 가운데에서도 간신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홀에서 춤추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말은 필요 없었다. 나는 잔을 내려놓고선, 스텝을 밟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춤을 췄다. 우리는 둥굴게 무리를 형성하고 춤췄는데, 가끔씩 한 명이 가운데로 들어와 메인 댄서 역할을 맡았다. 나도 한 번 들어와 춤을 췄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몸치고, 춤을 잘 못 춘다. 하지만 그건 상관 없었다. 애초에 다들 취해있어서 그런건 신경 쓸 겨를이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냥 이 밤을 즐기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았으니 말이다. 다른 건 다 필요없었다. 중요한 조건은 그냥 즐겁게 춤을 출 수 있느냐, 그것뿐이었다. 춤을 출 줄 모르지만, 그냥 신나게 스텝을 밟았다. 춤을 췄다. 그냥 그것뿐이었다. ​나를 춤에 끌어들인 사람들은 칠레에서 온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읽었다고 하니, 굉장히 좋아해했다. 나 역시 다른 남자 두 명을 끌어들였는데, 그들은 스위스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한 여자는 나보고 자기가 북경어를 할 줄 안다고,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 내가 중국어를 할 줄 모른다고 하자 그녀는 미안하다고 했다. 뭐, 상관 없었다. 그냥 신났으니까. ​그냥 신나게 춤을 추는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이 제일 행복했다. 다른 건 다 필요없었다. 그냥 이렇게 노는 것만으로도 신났다. 즐거웠다. 나는 지금 나와 함께 춤을 추는 이들의 이름도 모른다. 아마 오늘 밤이 지나면 우리는 모두 헤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건 상관 없었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된다. 이 밤을 즐기면 된다. 에든버러의 밤을 즐기면 된다. 그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바의 벽에 스코틀랜드인은 잉글랜드에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자유를 원한다고 써져 있었다. 그래, 자유. 춤을 출 자유. 맘껏 취할 자유. 그리고 처음 만난 이들과 친구가 될 자유. 이 자유면 충분했다. 인생을 즐기기엔 이 자유만 있어도 되었다. 이 밤이 지나고, 여행이 끝나고,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유로운 순간만을 즐기면 되었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굴복한 적이 없다!바에서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오니, 숙소 로비에서 가라오케쇼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한 팀씩 차례대로 나와 노래방 방기계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테이블에 앉았는데, 한 중년 부부와 동석하게 되었다. 그들은 브라질인으로,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 거주 중이라고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아는 게 없어서 이정후를 아냐고 물어봤다. 다행히 야구에 관심이 있는지, 이정후에 대해 알고있다고 답해줬다. 그들과 간단히 이야기하고 노래를 신청했지만, 계속 술을 마신 탓인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점원이 얼음물을 가져다주며 그만 숙소로 들어가라고 했고, 그녀 말대로 침대로 돌아가 그대로 뻗었다. 1층의 노랫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번 유럽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은 하루였다. 그리고 아마 내 평생 절대로 잊지 못할 하루이기도 했다. 이보다 더 즐거운 날이 올 수 있을까. 아마 힘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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